[시론] 공공의적

2024. 10. 24.

최근 ‘○○종합건축사무소가 100억원 이상의 법무부 주관 용역을 수주하는 등 사적 친분을 앞세워 각종 정부 관련 사업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시론의 단골 주제인 공공 발주사업의 계약자 선정과 공정성 문제에 대해, 첨언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발주 사업자 선정과정에 대해 공정성 관련 의혹을 접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그리고 건축사로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종합건축사무소가 민간 영역에서 사적 친분으로 설계용역을 수주했다면,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적 인연이 공공 발주사업의 계약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공공 건축물의 건축주는 국민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지를 확보하고 건축물을 지으며, 완공된 건축물은 국민이 사용한다. 그리고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중앙·지방정부 및 공공기관 등이 발주업무를 수행하고, 위촉된 심사위원 등이 사업자 선정업무를 수행한다. 만일 이 과정에서 대리인과 특정 업체 간의 사적 인연이 개입된다면, 다른 업체들은 공정하게 참여하고도 선정될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으며, 국민은 동일한 비용을 지불하고도 최선이 아닌 건축물을 사용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공공 자산을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사유화하는 행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고, 국민-대리인-참여업체 간의 신뢰는 사라져간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 요소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카페 테이블 위에 놓여진 휴대폰, 노트북, 가방 등을 아무도 훔치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며, 이를 우리사회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 삼기도 한다. 개개인의 양심이 구성원 간의 신뢰를 쌓아가고, 감시와 처벌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그 결과 점점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간다. 그런데, 남의 물건에는 손대지 않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다른 업체의 기회를 훔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익과 불이익 사이에 답이 있다. 카페에는 CCTV와 수많은 눈이 있다. 그리고 절도행위가 발각될 경우, 배상을 해야하는 것은 물론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남의 소지품을 얻을 확률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확률이 높다. 이익과 불이익을 따져보면, 양심을 지키는 쪽이 낫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공 발주사업의 계약과정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일탈을 통해 수억, 수십 억 원의 이익을 얻고 실적까지 쌓을 수 있다면, 흔들리는 양심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며칠 전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 심사위원 사전접촉금지 준수를 위한 캠페인에 동참해 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건축설계공모 사전접촉 금지 선언서를 제출하였다. 모든 관계자의 양심이 공정성의 첫걸음이 되기는 하지만, 공정한 과정과 결과까지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더 필요하다. 사회적 신뢰가 충만한 카페 테이블의 소지품 사례에 비추어 보면, 더 필요한 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공공의 감시다. 카페의 CCTV와 수많은 눈처럼, 선정 과정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작년에 참여한 화성시의 설계공모는 심사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심사위원의 모든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심사결과에 대체로 납득할 수 있었고, 당선안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 좌절과 원망 대신, 반성과 희망이 남았다. 선정 과정 공개를 의무화하고 전담 모니터링 기구를 상설화해서, 모든 관계자를 항상 지켜봐야 한다. 

둘째, 치명적인 처벌이다.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적발되면, 기대 이익을 초과하는 불이익을 받도록 해야 한다. 참여업체들이 들인 비용과 선정 과정을 반복해야하는 비용은 물론, 건축물을 사용하는 시기가 늦춰져서 발생하는 불편에 대한 배상만큼은 최소한 부담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정성을 훼손한 대리인이나 참여업체에 대해서는 자격 박탈까지 고려해야 한다. 흔들리는 양심을 바로잡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과격한 대책이라고 우려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는 이와 비슷한 수준의 감시와 처벌이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도로교통이다. 도로 위에는 수없이 많은 CCTV가 설치되어 단 1초도 빠뜨리지 않고 차량을 감시하고 있으며, 블랙박스가 없는 차량을 찾기 힘들다. 혹여 도로교통법을 위반해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있다면, 손해배상 책임은 물론 민·형사상 처벌을 받으며, 운전면허가 취소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언제든지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과격한 대책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공공 발주사업도 마찬가지다. 감시와 처벌 없이는 참여업체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건축사가 로비의 부족함이 아니라 설계의 부족함에 대해 고민할 때, 비로소 공공 건축물의 본래 목적인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불공정한 행위가 만연하다는 말도 있지만, 좌절을 겪고도 양심을 지키는 건축사 역시 많다. 이미 개인의 양심은 준비되어 있으니, 이제는 공공 자산을 사유화해서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공공의 적’에 대해 제도가 답할 차례이다.